폭탄공주 프롤로그
아팠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나는 죽을 거다.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미친 배송차에 들이받혀 날아가는 순간, 내 등을 봤다. 티셔츠 목덜미 부위에 붙은 택의 상표까지 뚜렷하게 보였다. 덕분에 하루 내내 티셔츠를 뒤집어 입고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큭. 크크크크크…”
웃음 밖에 안 나왔다. 죽어도 어떻게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은 날에 죽을까. 대출금 갚겠다고 알바란 알바는 다 했는데 이렇게 될 걸 왜 그 고생을 했나 싶다.
성휘 어쩌지? 걔 이제 2학년인데. 걔도 나만큼 알바 많이 하다가 내 테크 타서 쫓아오는 거 아냐?
아니다. 나 보험 들었다. 우리 성휘 학자금 대출 문제는 걱정 없겠네. 나, 마지막으로 누나 역할은 제대로 했구나.
그래도 미안하네. 오늘 치킨 시켜준다고 했었는데.
오늘따라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죽기 딱 좋은 날이었다.
“으윽.”
나는 몸을 움직여 보려고 노력했다. 놀랍게도 조금씩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다.
신기했다. 영화를 보면 올백 머리 아저씨가 아무나 목 잡고 콱 돌리면 바로 죽던데, 실제로는 아닌가 보다. 내 눈으로 등을 볼 정도면 그로테스크하게 꺾였을 텐데 아직도 살아 있다.
“여기야! 살아계신 것 같아!”
다소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다. 죽을 때가 되어서인지 저 사람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시를 낭송하는 건지 고대의 주문을 읊는 건지 운율이 담긴 목소리였다. 뱉는 말도 입에서 되는대로 지껄이는 느낌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뭐랄까… 외국인이 ‘아임 쏘리’라고 말했는데, ‘미안합니다’로 들리는 느낌?
“미안합니다.”
응. 이렇게.
사과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 밑에 칼자국 같은 상처만 빼면 꽤 반반한 축에 드는 남자였다. 목소리도 괜찮았다.
나를 친 배송 트럭의 운전자가 아닐까 싶다. 세상 참 힘들구나. 요 얼굴로 택배기사라니. 요튜브 대충 찍어도 먹고 살 만한 수준의 얼굴인데.
“빨리 죽여드리겠습니다, 공주님.”
택배기사가 단검을 들며 말했다.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저 얼굴로 요튜브 안 찍는 이유가 있었구나.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택배기사는 내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뒤로 넘겼다. 내가 예뻐서 쓰다듬어준다기보다 단검으로 콱 찌를 부위를 관리하는 느낌이었다.
뒤이어 단검을 머리 위로 치켜든다. 진짜로 내 이마를 저걸로 찍을 분위기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사, 살려주세요.”
사이코패스 놈이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예?”
내 말이 의외라는 듯 묻는다. 나도 의외여서 반문했다.
“네?”
“방금 살려달라고 하셨습니까?”
“네, 뭐…”
주변에서 수풀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풀? 그러고 보니 목덜미에서 까끌까끌한 감촉이 느껴지고 풀냄새가 났다. 내가 차에 받혀 공원까지 날아갔나? 아니, 그전에 근처에 공원이 있긴 있었나?
“뭐해? 빨리 죽여드려!”
옆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조수석에도 미친 놈이 타고 있었나 보다. 나는 다시 말했다.
“살려주세요. 제발요.”
“예?”
“네?”
택배기사와 나는 같은 질문과 같은 반문을 반복했다. 택배기사는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곧 택배기사가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공주님이 살려달라셔.”
“엥?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없을 리가 없잖아, 미친놈아. 아니, 그리고 왜 아까부터 자꾸 나한테 공주님이래? 컨셉 살인마야?
택배기사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공주님, 제대로 생각하고 말씀하십시오. 정말로 죽이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네. 살려주세요. 신고 안 할게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어, 진짜네?”
옆에 있는 누군가가 놀랍다는 투로 말했다. 심지어 말꼬리를 이어 딸꾹질도 했다. 정말 놀란 모양이었다.
택배기사는 단검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내 뺨을 쥐었다. 기이하게도 이놈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혹시 여기로 구르실 때 어디에 머리라도 부딪혀서 기억을 흘리신 건 아닙니까? 우리에게 시해를 부탁한 건 공주님이십니다. 정말 죽이지 않아도 됩니까? 나중에 마음 바뀌시는 건 아니죠?”
“어… 뭔가 싶긴 하지만, 그랬다 칠게요. 어쨌건 지금은 죽기 싫어요. 근데 놔두고 가셔도 저 죽지 않을까요? 목이 돌아갔는데.”
“예?”
“네?”
“목이 돌아가다뇨?”
“안 돌아갔나요?”
택배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부터 느낌이 싸했다. 뒤늦게 나는 택배기사의 옷차림을 살필 수 있었다. 택배기사라기보다 그냥 기사 같았다.
“저… 일어나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공주님.”
힘껏 상체를 일으켰다. 놀랍게도 일어나진다. 그제야 옆에서 말하던 사람도 보였다. 둘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긴 장검을 손에 쥐고 묵묵히 노려보는 여자였다.
거슬리는 것이 많았다. 일단, 나를 친 차가 안 보였다. 아스팔트 도로도 안 보였다. 주변에 나무가 많고 경사진 언덕이 보인다. 예술회관역 부근이 아니라, 어떤 시골 마을 같았다.
가장 거슬리는 것은 사람이었다. 날 단검으로 찍으려 했던 미친놈만 빼고 나머지는 외국인이었다. 모두 드라마에서 볼 법한 중세시대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다들 누구세요?”
내 질문을 받은 전직 오해 속의 택배기사가 눈매를 찌푸렸다. 녀석은 슬그머니 손을 끌며 바닥에 놓인 단검을 쥐려 했다.
“그 칼 잡지 마요. 전 진짜 살려달라고 했어요. 죽기 싫어요.”
“하지만, 공주님. 지금 공주님께서는 조금 오락가락하시는 느낌인지라… 상반된 명령을 받았을 때는 아무래도 좀 더 정신적으로 건강하시던 때를 우선순위에 놓는 것이…….”
“나, 건강해요. 아저씨가 애매하시면 나중에 3차로 물어보세요. 그때 가서 결정해도 안 늦잖아요. 사람이 왜 그렇게 급해요? 진짜 택배하시나?”
“네? 무슨 말씀이신지…….”
“죽기 싫다고요. 애초에 왜 죽이려는 건데요? 제가 절 죽이라고 청부했다고요? 아니, 제가 왜요?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나는 속사포처럼 말하다 말고 입을 쩍 벌렸다. 기가 막혔다.
“노리고 치신 거예요? 어쩐지 차가 빨랐어. 생각해보니까 브레이크도 안 밟은 거 같아. 그 옷 입고 운전하는 것도 되게 이상해. 아하, 그러네. 아저씨, 사람 잘못 봤네. 나, 저 죽이라는 청부 안 했어요. 딴 사람이랑 착각한 거예요.”
기사가 괴롭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깊게 갸웃거렸다. 바닥에 놓인 단검과 기사의 손이 더 가까워졌다.
“역시 공주님… 좀… 으음…….”
“진짜 하지 마요!”
내가 먼저 단검을 잡아챘다. 단검을 쥐었음에도 누구도 긴장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소로운 건가?
기사는 말했다.
“정말로 죽기 싫으신 거라면 하명하십시오, 공주님. 마차도 부서졌고, 호위병도 모조리 죽었습니다. 이대로 왕국에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쩌시겠습니까? 몸을 숨기시겠습니까? 아니면, 망국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일단 일어났다. 삭신이 쑤셨으나 생각보다는 견딜 만했다.
“가까이 오지 마요.”
나는 세 사람을 단검으로 위협하며 천천히 비탈길을 올라갔다. 비탈 곳곳에 나무 파편이 널브러져 있었고, 위쪽에서는 말 울음이 들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비탈을 오르는 동안 세 사람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라왔다. 두 손까지 사용해 기어서 정상에 도착한 나는 비탈 위가 비포장도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폭 좁은 길이었다.
툭.
길 따라 죽 둘러보던 나는 단검을 떨어뜨렸다. 넋도 같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왔네. 왔어. 이거 딱 그거네.”
저편에 투박한 갈색 고성이 보였다. 성벽도 보이고 허름한 나무집이 쫙 깔렸다. 아무리 봐도 현대 시골은 아니었다. 민속촌도 저 정도는 아니다.
나는 아무래도 중세 서양의 어딘가로 타임슬립을 한 모양이었다.
프롤로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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